전망대에서 바라본 회룡포
2000년도에 방영되었던 KBS 인기드라마 『가을동화』의 초기배경이 이곳 회룡포와 용궁면 소재지로 하여 많은 이들이찾아오고 있다.
장안사
회룡포 마을 강 건너편에서
아쉽게도 물이 차올라 마을로 들어가는 뿅뿅다리가 중간에 물에 잠겨 있어 마을로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세 개의 강과 세 개의 산맥이 만나는 삼강마을
이 삼강마을에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마지막 주막 삼강주막이 남아있다.
삼강마을은 태백산에서 발원한 낙동강, 소백산에서 발원하여 영주,예천을 지나 용궁 회룡포를 감돌아 흘러내린 내성천, 문경을 거쳐 흘러 내려온 금천 이 세 개의 큰 강이 합류하는 지역을 삼강(三江)이라고 하였는데, 이곳에 삼강나루터가 있고, 삼강주막이 자리잡고 있다.
낙동강이 충분한 수량을 확보하여 낙동강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 바로 이곳부터였다.
삼강마을은 세 개의 강이 합류되는 지점일 뿐만 아니라 안동에서 흘러온 학가산맥과 대구에서 흘러온 팔공산맥, 문경에서 흘러온 주흘산맥 등 세 개의 큰 산맥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예전엔 강물의 수량이 많고 수심이 깊어서 소 10마리를 한꺼번에 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배가 다녔고, 남해안에서 올라온 소금배가 안동 예천지역으로 들어가기 전에 한동안 정박하는 장소이기도 했으며, 경상도 동남 내륙지역에서 한양 서울로 출입하는 사람들이 건너 다니는 주요 길목이기도 하였다.
삼강나루터 옆에는 우리나라에 마지막 남은 조선시대 주막이 있는데, 주모 유옥연씨가 2005년 89살로 세상을 떠나면서 빈집으로 남아있다가 지금은 예천군에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서 주모도 새로 선정하고 주막도 새로 보수공사를 하고 주변에 다른 건물들도 새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문화해설사분도 그곳에 배치되어 삼강마을에 대해서 친절히 설명해주신다.
이 마을은 임진왜란 직후 약포(藥圃) 정탁(鄭琢)의 셋째 아들 청풍자(淸風子) 정윤목(鄭允穆)이 터전을 잡아 살던 곳이다. 정윤목은 나이 19세 때 중국 사신으로 가는 아버지 정탁을 따라 중국에 들어갔다. 그 때 백이숙제(伯夷叔齊)의 사당을 지나다가 그곳에 걸린 백세청풍(百世淸風)이란 글자에 감동되어 그 글자를 실물 크기로 베껴 왔다. ‘영원히 맑은 바람’. 세상의 부귀영화에 굴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 인간의 도리와 지조를 지킨 백이숙제 형제의 올곧은 삶을 상징한 말이다. 그는 이 글을 좋아하여 자신의 호를 청풍자(淸風子)라 하였고, 삼강 마을에 건축한 강당 이름을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 하였으며, 혼탁한 정치현실을 등지고 이곳에서 강산을 벗 삼아 학문과 강학으로 일관하였다.
이후 삼강마을은 청풍자 정윤목의 후손들이 조상의 덕을 기리면서 대를 이어 살아가는 터전이 되었다. 강을 훤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남쪽 언덕에 백세청풍(百世淸風)의 강당이 있고, 지금은 빈터만 남았지만 영남지역의 대표적 학자였던 정몽주(鄭夢周), 이황(李滉), 류성룡(柳成龍) 세 분을 배향한 삼강서원(三江書院)이 있었으며, 강 건너편 월봉산(月峯山) 아래 세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는 삼호정(三湖亭)이 있었다. 특히 마을 아래 옛 나루터 곁에 자리한 주막집은 낙동강 연안에서 유일하게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그 옆에 서 있는 회화나무 고목과 함께 세월의 장구함을 상징한다.
삼강마을은 이처럼 경치가 수려할 뿐만 아니라 뱃길을 이용한 인물의 왕래가 잦은 교통의 요지였고, 청주정씨 후손들의 고적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경치가 아름다운 여덟 곳을 골라 삼강팔경(三江八景) 시를 지었고, 마을 앞을 지나는 낙동강 구비마다 뛰어난 절경(絶景)을 두고 삼강구곡(三江九曲) 시를 짓기도 하였다. 이곳을 왕래하는 선비들은 경치 좋은 명승과 고적을 시로 읊었고, 주막에 머물던 길손과 뱃사공 보부상 등은 강 마을에 전해오는 옛 이야기와 경험담을 서로 주고받으며 흥미로운 설화를 만들어내었다. 온갖 문학 창작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삼강마을은 경상북도 문화마을로 지정되었고, 강변에 남아 있는 옛 주막으로 널리 알려진 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 이 마을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강마을 고적을 대상으로 한 문학 창작의 공간으로 더욱 중요한 가치가 있다.
출처-경북대신문
삼강주막에는 예전에 주모가 기록해둔 외상장부가 주막 곳곳에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들돌
들돌은 일반적으로 농촌의 청년이 장성하여 농부로서 인정받는 의례에서 생겼다.
나루터와 주막을 중심으로 많은 물류의 이동에 따라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 돌을 들을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품값을 책정하는 도구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500년이 넘은 회화나무
이 회화나무는 아래와 같은 전설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300년전 상주군에 있는 한 목수가 이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면 사고도 나지 않고 큰 돈을 번다하여 연장을 가지고 이 나무를 베려하므로 사람들은 마을을 지키는 영험스러운 나무라 하여 베지 못하게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나무그늘이 좋아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백발을 날리는 노인이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서 "만약 이 나무를 해치면 네가 먼저 죽으리라"하므로 꿈에서 깨어나니 하도 생생하여 식은 땀을 흘리며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 혼비백산 달아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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